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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chapter 4

경제

by 경제학자 양나희 2025. 4. 26. 10:52

본문

경제정책은 이제 단순한 숫자 맞추기의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경제 정책의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습니다. 바로 그 접점에서 행동경제학이 힘을 발휘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 당연했던 영역에서도, 실제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경제는 현실적 인간을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때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행동경제학적 정책 설계입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경제를 이해하는 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경제를 이해하는 길이다.

독일의 탄소가격제

2021, 독일은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 신호를 강화하며 기후 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른바 CO₂ 가격제는 단순히 세금을 부과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적으로 이 제도의 핵심은 프레이밍에 있었습니다. 단순히 탄소세를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독일 정부는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수익의 일부를 국민 환급 형태의 기후 보너스로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탄소세의 고통을 심리적으로 완화하며 손실회피를 완충하고 정책에 대한 수용성을 높아주는 이중 효과를 일으킵니다 게다가 이 정책은 기본값 설정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전기요금제에서 탄소함량이 낮은 친환경 요금제를 기본 옵션으로 설정한 일부 지역에서는, 아무런 법적 강제 없이도 친환경 전력 선택률이 90%를 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의 힘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방향을 잘 설계하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연금 개혁

1990년대 후반, 스웨덴은 연금 제도의 근본적 재설계를 단행했습니다. 개인 퇴직연금의 일부를 자가 운용하는 구조로 바꾸었는데, 여기서 행동경제학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고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선택 설계를 도입했습니다. 800개가 넘는 펀드 중 하나를 스스로 고르도록 유도하되,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국가가 설계한 기본펀드(AP7 Såfa)에 투자되도록 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기본펀드가 나중에 민간 선택 펀드보다 더 좋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민 다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얻은 셈입니다. 이는 바로 기본값 효과와 현상 유지 편향의 교차 작용입니다. 사람들은 바꾸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를 전제로 제도를 설계하면, 정책의 효과는 합리성에 호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규제 도입

디지털 플랫폼, 특히 빅테크 기업의 독점적 행태는 단순한 시장 집중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자 경험 설계와 알고리즘 구조까지 포섭하면서, 행동경제학적으로 의도된 유도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스크롤 무한 피드, 좋아요 버튼, 푸시 알림 등입니다. 이는 사용자에게 선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편향과 도파민 강화 루프를 자극하여 사용 시간을 늘리고 이탈을 어렵게 만듭니다. 유럽연합은 이를 반영해 디지털 시장법을 제정하고, 기본 검색 엔진을 사용자가 선택하도록 하고 플랫폼 간 데이터 독점 공유를 금지시켰습니다. 아울러 앱 스토어에서 자기 선호 표시를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반독점법적 접근이 아니라, 행동 유도를 설계적으로 차단하는 구조적 개입입니다. 기술에 기반한 선택의 유도를 인지하고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앞으로 정책 설계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노르딕 국가들, 특히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 같은 유럽 복지국가들은 단순한 재분배 시스템을 넘어,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신뢰 기반의 제도 설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보육료 자동 감면 시스템입니다. 이들 국가는 저소득층을 위한 보육료 지원금을 신청형이 아닌 자동 적용형으로 설계합니다. 사람들은 자존심, 정보 부족, 절차 복잡성 등으로 인해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비신청 효과라고 합니다. 복지국가들은 소득 데이터를 자동 연동함에 따른 감면 대상을 자동으로 판별하고 그에 따라 지원금을 자동으로 적용하는 설계시스템으로 극복합니다. 이는 곧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지 마찰 제거의 좋은 예시입니다. 복지정책의 효율은 금액보다 설계에 달려 있으며, 제도의 접근성이야말로 핵심 변수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치며

경제는 규제와 인센티브의 조합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논리나 계산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때론 비합리적이며, 습관에 익숙하고, 불확실성을 피하려 하며, 눈앞의 보상을 과대평가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래프를 그리며 정책을 설계하지만, 정작 그 정책이 도달해야 하는 사람은 숫자가 아닌 감정과 망설임을 가진 존재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제정책의 언어를 바꿔놓습니다. 명령이 아닌 유도, 처벌이 아닌 설계, 효율보다 접근성. 이것이 행동경제학이 공공정책에 기여하는 가장 강력한 전환입니다. 탄소세 정책을 환경보호 의무로 재정의하고, 복지제도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적용되는 권리로 바꾸며, 플랫폼의 알고리즘 유도를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벗겨내는 일.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학문,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정책 설계가 있습니다.

 

정책의 진짜 목적은 법령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 설계가 인간을 중심으로 갈 때, 정책은 더 따뜻해지고, 더 실효성 있게 작동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닿게 됩니다. , 좋은 정책은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돕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미래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정책은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기준 삼아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과거의 정책이 국가를 위한 시민을 상정했다면, 미래의 정책은 사람을 위한 국가를 그려야 합니다.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정책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설계 논리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주체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바로, 인간 중심의 행동경제학적 접근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 변화, 고령화, 디지털 불평등, 저출산 등의 위기는 모두 수치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위기의 공통점은 인간의 행동 변화 없이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정책은 그 변화의 씨앗을 설계하고, 길을 열며,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 정책들이 단순히 문서 속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변화시키고, 결국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며 숫자와 모델 너머의 사람을 향해 설계된 정책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그 여정의 지도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지도를 펼치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설계의 언어로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제정책이 진화해야 할 방향이며, 우리가 향해 가야 할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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