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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chapter 3

경제

by 경제학자 양나희 2025. 4. 2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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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경제학은 늘 한 가지 가정을 깔고 출발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언제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조금 다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미래의 안정성을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며, 명백한 손실 앞에서 비논리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경제적 행동이 언제나 수학적으로 깔끔하지 않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우리 모두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행동경제학은 등장합니다. 고전 경제학의 틀에 심리학을 접목시키며, 이론이 아닌 실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이 학문은 이제 더 이상 경제학의 변방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경제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행동경제학적 시각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행동 경제학, 이성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행동 경제학, 이성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경제

하버드 대학교의 허버트 사이먼은 완전한 합리성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린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이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고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괜찮은 수준의 선택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제한된 합리성의 개념입니다. 정보는 항상 불완전하고, 시간은 제한적이며, 인지 능력은 유한합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처럼 계산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직관, 습관, 심지어 운에 기대어 결정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의사결정은 인지 편향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는 경제 시스템 전반에 걸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기대이론은 고전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을 근본부터 뒤흔든 이론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이익보다 손실에 두 배 이상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예컨대, 1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0만 원을 잃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손실회피는 주식시장, 보험 가입, 소비자 심리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 힘을 발휘하며, 시장의 움직임조차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행동 경제학

같은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프레이밍 효과라고 합니다. 이를 가장 정교하게 활용한 것이 바로 넛지 이론입니다. 넛지란 팔 비틀지 않고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부드러운 개입입니다. 예를 들어, 장기 기증 서약률이 높은 국가는 대부분 기본값을 기증하는 것으로 설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선택지의 배열 순서나 문장 구성 하나로, 정책의 효과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인지적 약점을 강요나 명령이 아닌 설계로 조율합니다. 이는 경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장기적 혜택보다 눈앞의 즐거움을 더 크게 평가하는 경향, 이른바 현재편향은 행동경제학이 포착한 또 하나의 인간 심리입니다. 미래의 10만 원보다 오늘의 9만 원이 더 낫다는 선택은 그 자체로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너무나 보편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경제학의 정책 디자인

이와 연관된 개념인 시간할인율 역시, 재무적 판단과 저축 행태, 건강관리 행동 등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단기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개인은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에 빠지며, 이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성을 가졌지만, 감정과 본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제는 바로 그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실제 정책 설계에 활발히 응용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헤이비어 인사이트 팀은 넛지를 기반으로 탈세율을 줄이고, 세금 신고율을 높였으며, 연금 가입률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소비자 보호, 금융교육, 건강증진 정책, 환경 캠페인 등에서 행동경제학은 정책 효율성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제 대신 선택, 규제 대신 구조, 억압 대신 유도. 그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 만들어내는 정책 디자인의 새로운 언어입니다.

 

전통 경제학은 통제된 변수와 정제된 모형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공식에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습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며, 경제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두 학문은 충돌이 아니라 보완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는 규칙을 세우고, 다른 하나는 그 예외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두 줄기의 흐름은 결국 더 풍부한 경제 이해로 수렴됩니다.

마치며

경제는 숫자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의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을 기반으로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종종 감정과 기억, 편향과 환경에 좌우됩니다. 행동경제학은 그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경제를 이론이 아닌 현실로 이해하려면, 인간이라는 변수를 빼놓아선 안 됩니다. 경제는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 아니라, 욕망과 공포, 기대와 실망이 얽힌 인간 행동의 집합체입니다. 이성은 경제의 전부인가에 대한 대답은 행동경제학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실제로 우리가 더 나은 정책을 설계하고, 더 공감 가는 시장을 만들며, 더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꿀 때, 행동경제학은 그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수치와 통계로는 포착되지 않는 인간의 흔들림을 이해하는 것, 바로 그곳에서 진짜 경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작은 선택이 수천 명의 삶을 바꾸는 이 시대에, 경제는 인간다움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경제를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때로 논리를 배반하고, 때로는 감정에 기댑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경제의 진실한 얼굴 아닐까요?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줍니다. “당신의 비합리성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의 실마리입니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경제학은 생기를 잃고, 인간을 포용한 경제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숫자와 마음, 이성과 감정 사이의 다리를 놓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다리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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